아무도 준비되지 않았다 — 임재범의 마지막 작별

한국 록의 전설이 40년 음악 인생의 막을 내렸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팬들은 한참 동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수정됨|7분 읽기0
아무도 준비되지 않았다 — 임재범의 마지막 작별

2026년 5월 17일 밤, 임재범이 서울 올림픽홀 무대를 내려왔을 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3시간 동안 40년 음악 인생의 모든 것을 20곡에 담아 쏟아낸 뒤였다. 수천 명의 관객은 공연이 끝나도 자리를 지키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도 끝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임재범은 그날 밤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말했다. "오늘 저의 40년 음악이 완전히 멈춥니다. 내 노래들이 여러분의 삶에서 위로와 힘이 됐다는 사실, 그것이 제게 가장 큰 의미였습니다."

공식 타이틀 '나는 임재범이다'로 진행된 이틀간의 고별 콘서트는 한국 록 음악 역사상 가장 화려한 커리어 중 하나의 마지막 장이었다. 40년 동안 임재범은 드문 존재가 됐다. 감정 그 자체로 불리는 가수, 가장 조용한 순간에도 관객의 숨을 멈추게 하는 목소리의 주인공.

사라지기를 거부한 전설

임재범의 이야기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보컬로 데뷔한 그는 첫 무대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통에서 단련된 것 같은 목소리, 속삭임에서 포효까지 친밀함을 잃지 않고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음역. 1991년 솔로로 전향한 뒤 그는 한 세대를 대표하는 노래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비상, 고해, 너를 위해, 이 밤이 지나면 같은 곡들은 한국인의 문화적 기억 속에 영구히 새겨졌다. 밤이 끝날 때,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불가능한 고음에 도전하는 모든 노래방 자리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들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훈련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그냥 그의 것이었다.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다. 길고 긴 공백기와 개인적인 고난도 있었다. 2017년에는 그가 가장 힘든 시절 버팀목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아내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7년의 공백 끝에 2022년 앨범 세븐 콤마로 돌아와, 세월이 무엇을 가져갔든 그의 목소리만은 가져가지 못했다는 걸 증명했다.

한국이 멈춘 은퇴 선언

소식은 2026년 1월 4일, 조용하고 예고 없이 찾아왔다. 임재범은 SNS에 영상 편지를 올려 40주년 전국 투어를 끝으로 음악계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며칠 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그는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박수 받을 때 떠나고 싶습니다."

2025년 11월부터 이미 진행 중이던 투어는 순식간에 다른 무게를 갖게 됐다. 12개 도시의 공연은 거의 즉시 매진됐다. 이미 공연을 봤던 팬들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기 위해 달려왔고, 부모님의 플레이리스트에서만 그를 알던 이들도 40년 열풍의 이유를 직접 확인하러 왔다. 답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은퇴 선언 이틀 뒤인 1월 6일, 임재범은 마지막 싱글 삶은 드라마를 발표했다. 서두르지 않고, 감정적으로 정직하며, 마지막 음이 사라진 후에도 오래 머무는 선율을 담은 노래였다.

40년이 압축된 3시간

피날레는 5월 16일과 17일, 서울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펼쳐졌다. 팬들의 요구로 추가된 앙코르 공연이었다. 부모님의 플레이리스트로 임재범을 알게 된 10대부터 처음부터 함께한 40~50대 팬들까지, 세대를 초월한 관객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그는 세븐 콤마 앨범 수록곡 내가 견뎌온 날들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요'라는 가사는 작별을 거부하는 작별로 밤 전체를 감쌌다. 이후 셋리스트는 큐레이션되기보다 기억되는 것 같았다. 노래들은 마치 스스로 순서를 정한 듯 등장했고, 각각은 '끝'이라는 맥락 속에서 새롭게 착지했다.

감정적 절정은 고해였다. 한국에서 '노래방 금지곡'이라 불릴 만큼 보컬적으로 까다로운 이 노래가 시작되자 임재범은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무대 스크린에 투영된 성모 마리아 이미지를 바라봤다. 긴 인트로가 지나고 그가 다시 관객을 향해 돌아섰을 때, '어찌합니까'라는 첫 소절이 울려 퍼졌다. 공연장에는 한숨과 탄성이 뒤섞인 소리가 번졌고, 이윽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20곡, 약 3시간 동안 백보컬에 어려운 구간을 넘기거나 고음을 슬쩍 피해가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투어의 매일 밤," 그는 관객에게 말했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노래했습니다."

그가 남긴 말들

곡과 곡 사이, 임재범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오래 생각한 사람의 신중함으로 말했다. "40년을 돌아보면 정말 많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걸어온 모든 길에 여러분이 항상 있었습니다. 함께 걸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 관객이 계속 노래해달라고 외치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슬퍼하지 마세요. 즐기세요.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공연은 팬들이 수 주에 걸쳐 준비한 앙코르로 막을 내렸다. 공연장 전체가 하나의 리듬으로 빛나는 플래시라이트 이벤트와, 임재범 자신도 감동받은 것이 역력한 떼창이 이어졌다. 그는 무대 끝에 서서 관객을 오래 바라봤다. 그 표정에는 감사함이 가득했다.

콘서트 말미에 상영된 짧은 영상 인터뷰에서 마지막 공연 후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임재범은 웃으며 답했다. "공연 리뷰 확인하고, 재활용 쓰레기 내놓으러 가야죠." 관객은 웃으며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저는 항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인사말에서 임재범이 말했다. "그 꿈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가 걸을 길

64세의 임재범은 앞으로의 계획을 분명히 밝혔다. 딸과 함께 자유롭게 걸을 수 없을 만큼 주목받아온 수십 년의 공적인 삶을 마치고, 이제 단순하게 살고자 한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공연 마지막에 팬들에게 말했다. "떠나는 게 아니라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딸과 함께 마음껏 걸어다니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럴 수 있겠죠."

그의 음악은 물론 어디 가지 않는다. 40년에 걸쳐 쌓아온 음반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새해 전날과 일요일 늦은 아침에, 서로 알지 못하지만 그 가사가 자신을 위해 쓰였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들.

"저는 떠나지만," 임재범이 말했다. "내 음악은 여러분 곁에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겁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 올림픽홀 밖에서 팬들은 거의 한 시간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서울 밤하늘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공개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서대문에서 온 한 관객은 이렇게 말했다. "가수 중의 가수였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이 떠나는 건 정말 아쉽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택하신 거잖아요.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임재범다운 마무리였다. 마지막까지 철저히 자신의 방식으로. 40년 동안 듣는 사람 누구에게든 마치 자신을 위해 쓰인 것처럼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어왔고, 그 40년의 끝도 같은 방식으로 장식했다. 지름길도 없었고, 예외도 없었다. 단 한 번,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리고 조용히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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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 Hojin
Jang Hojin

Entertainment Journalist · KEnterHub

Entertainment journalist specializing in K-Pop, K-Drama, and Korean celebrity news. Covers artist comebacks, drama premieres, award shows, and fan culture with in-depth reporting and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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