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CF 스타, 이제 Z세대에겐 '그냥 카페 언니'
이상아, 강아지 카페 운영 일상과 황당한 성형외과 방문기, 그리고 이젠 부모님만 자신을 알아본다는 현실을 털어놓다

이상아가 MBN 예능 프로그램 '돈치미'에 출연해 그가 늘 가장 잘해왔던 것을 또 한번 해냈다. 스튜디오의 모든 이를 웃게 하고, 탄성을 지르게 하고, 그리고 SNS로 손을 뻗게 만든 것이다. 1980년대 내내 한국의 모든 광고 시간대와 10대 방 벽을 장식했던 이 베테랑 배우에게는 조용한 근황이 있었다. 요즘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강아지들에 둘러싸여 보낸다. 강아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5월 2일 MBN에 방영된 이 에피소드는 '돈벌이는 어디서 끝나는가'라는 주제를 다뤘는데, 이것이 이상아에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개인적인 공명을 만들어냈다. 이어진 이야기는 그가 열세 살에 시작해 CF 500편과 한국 영화계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을 거쳐, 전혀 예상치 못하게 경기도 어딘가의 강아지 유치원에 도달하게 된 40년 커리어의 여정이었다.
책갈피에서 목줄로
이상아가 '돈치미' 출연에서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가 한때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아야 한다. 진행자 김용만은 즉시 분위기를 잡았다. "장원영과 카리나의 시대가 있다면, 40년 전에는 그의 시대가 있었다." 공동 진행자 이현이는 그를 "시간이 멈춘 사람"이라 불렀고,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방부제 미모'다. 패널 최홍림은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중학교 때 이상아 책갈피가 최고였어요. 우리 세대 최고의 팬심 아이콘이었죠."
소셜미디어도 스트리밍 플랫폼도 없던 시절, 코팅된 플라스틱 책갈피는 한국판 스타 카드였다. 학생들은 교과서 사이에 끼워두고, 서로 교환하고, 수집했다. 그리고 1980년대 내내 이상아의 얼굴이 그 위에 있었다.
그는 1984년, 열세 살 중학생의 나이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듬해에는 임권택 감독의 1985년 작 '길소뜸'에 출연하며 첫 번째 주요 스크린 역할을 맡았다. 이후로는 CF만 약 500편을 찍었다고 스스로 밝힌 광고 커리어가 이어졌다. "11~12살 때부터 일을 했어요. 제 돈을 직접 관리한 적이 없어요. 어머니가 다 해주셨거든요. 지금도 돈 개념이 없어요." 그는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오늘날 그 여성은 집에서는 강아지 다섯 마리와 함께 살고, 밖에서는 강아지 카페와 유치원을 운영한다. "집에서는 강아지 다섯 마리의 사람이고, 밖에서는 더 많은 강아지들의 이모예요." 강아지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했다. "강아지들이 에너지를 엄청 빼앗아가요. 하지만 받는 힐링도 그만큼 커요."
관상 수술을 거절한 의사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순간은 아마 이상아가 전한 성형외과 방문기였을 것이다. 외모가 아닌 재물운 때문에 갔다는, 매우 독특한 사연이다.
이상아는 오래전부터 관상을 믿는다. TV에서 코끝이 들려 콧구멍이 보이면 '돈이 새 나간다'는 내용의 방송을 본 뒤 거울을 들여다봤고, 덜컥 겁이 났다. 처음에는 코 모양을 잡아주는 클립을 사서 집에서 착용해봤다.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결국 클립은 쓰레기통으로 갔다.
그래서 성형외과를 찾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요청 사항이 꽤 이례적이었다. "예뻐지려고 온 게 아니라 관상 수술을 하러 왔다고, 돈이 새나가지 않게 콧구멍을 막아달라고 했어요." 이상아와 비슷한 연배였던 그 의사는 단호히 거절했다. 거절의 이유는 실용적이면서도 나름의 감동이 있었다. "얼굴이 바뀌면 우리 세대 책갈피 미인이 사라지는 거라고, 절대 못 하겠다면서 다른 병원에도 절대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의사의 마지막 조언은 진지하게 전달됐다고 한다. 걸을 때 고개를 살짝 숙이라는 것. 그 각도에서 보면 콧구멍이 덜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됐다. 이야기는 방영 후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는데, 많은 시청자들이 이것이야말로 이상아다운 에피소드라고 입을 모았다. 자기 비하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사랑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어머니가 끝까지 숨겼던 출연료
웃음 뒤에는 조용한 울림이 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상아의 첫 영화 출연료, 그리고 어머니가 수년간 숨겨온 비밀의 이야기였다.
그의 데뷔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1985년작 '길소뜸'으로, 현재 한국 영화사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작품이다. 그때 이상아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출연료는 100만 원. 김용만은 현재 가치로 약 1,000만 원에 해당한다고 추산했다.
어머니는 당시 관행대로 출연료를 직접 받으러 갔다. 돌아오는 길, 어둡고 비가 내리던 밤에 사건이 일어났다. 뒤에서 접근한 낯선 사람이 옆구리에 날카로운 것을 들이대는 사이, 오토바이를 탄 또 다른 사람이 가방을 낚아챘다. 출연료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어머니가 끝까지 말을 안 하셨어요. 막 시작한 커리어에서 이 사실을 알면 의욕을 잃을까봐 걱정하셔서 완전히 숨기셨다고.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어요." 스튜디오가 잠시 조용해졌다. 패널 심진화가 물었다. 혹시 출연료를 노린 누군가가 목표로 한 것 아니냐고. 이상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배우라는 것도 아무도 몰랐을 테니까요."
이 이야기는 주로 코미디로 진행됐던 출연에 예상치 못한 깊이를 더했다. 긴 화보처럼만 보이는 이상아의 커리어가, 처음부터 훨씬 복잡한 무언가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환기시켜줬다.
부모님만 알아보는 손님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이상아는 강아지 카페에서 특이한 정체성 문제를 겪는다고 털어놨다. 주 고객층은 20대 중반이다. 그 연령대는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그들은 카운터 뒤에 서 있는 여성을 본다. 친절하고, 분명히 잘 가꾼 외모에, 가끔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만한 나이 듦. 그리고 대부분은 그냥 직원이라고 결론 낸다.
"이모", 그가 이미 그것에 익숙해진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인식이 일어나는 패턴은 세대를 통해서다. 젊은 손님이 부모님과 함께 카페를 방문한다. 손님은 이상아가 누구인지 모른다. 부모님이 두 번 쳐다본다. "저분, 이상아 씨 아니야?" 자녀는 어리둥절해한다. 부모님의 기억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 인식의 연쇄가 그의 일상적인 직장 풍경이 됐다.
패널 윤영미는 이상아의 옛 남성 팬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일부러 찾아올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상아는 잠시 생각했다. "못 찾아요. 직원인 줄 알거든요."
'돈치미' 에피소드가 새로운 방문객 물결을 그의 카페로 보낼지 아닐지와 무관하게, 이상아는 자신이 만들어온 삶에 완전히 편안해 보였다. 켄넬을 관리하고, 의사의 조언대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걸으며, 옛 팬들이 자녀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도록 내버려 둔다. 한때 전국 모든 책갈피에 얼굴이 있던 그 여성에게, 잠깐 낯선 사람이 되는 것은 상실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한 종류의 자유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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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Journalist · KEnterH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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