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가 공연 전 한 말, 그 순간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장현성이 전한 원로 배우의 충격적인 한마디 — 매 공연마다 눈물을 참게 되는 이유

연습을 마치고 마련된 단출한 저녁 자리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원로 배우 신구는 후배 배우들이 아무 말도 잇지 못할 무거운 한마디를 담담히 꺼냈다. 신구는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가장 연로한 연극 배우다.
"연습 중에 내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어. 공연 도중에 그럴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을 한 번쯤 대비해 뒀으면 좋겠다. 내가 없어도 이 작품을 어떻게 이어갈지, 모두가 생각해 봐 달라." 신구는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께 공연 중인 장현성에 따르면, 그 자리의 배우들은 어떤 대답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의 이 순간은 지금 NOL 서경스퀘어 무대에서 매일 밤 관객이 마주하는 공연의 정서적 중심을 이룬다. 블랙코미디 연극 불란서 금고: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는 오는 2026년 6월 7일까지 이곳에서 공연된다.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공연은 기존 일정에서 일주일 연장됐고, 최근 수년간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회자된 작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도 준비하지 못했던 순간
극 중 도덕적 갈등에 휩싸인 교수 역을 맡은 장현성은 최근 인터뷰에서 그날 저녁의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를 뒤흔든 것은 '죽음의 가능성' 그 자체가 아니라, 신구가 그 말을 꺼내는 방식이었다. 조금의 감정도 과장하지 않은, 그야말로 담담한 말투였다고 했다.
장현성은 "이런 대선배님들은 우리가 듣기만 해도 무너질 법한 이야기를 편안한 일상 대화처럼 하신다"며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에 남는다. 날씨 이야기하듯 툭 꺼내시는데, 그 자리의 모두가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장현성은 모든 공연을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함께 서는 한 회, 한 회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시간이다. 거의 매 공연마다 눈물을 참는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바로 옆에서 연기하는 신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경험에 대해서도 그는 찬찬히 풀어 놓았다. 긴 대사를 이어 갈 때 얼굴에 떠오르는 집중력, 한 줄 한 줄을 기억 속에서 끌어올리는 신체의 긴장, 매 순간을 향한 완전한 몰입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했다. 장현성은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경건하다"며 "아흔이라는 나이에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신과 몸에 쌓였을 시간을 떠올리면,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솟고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했다.
거절할 수 없었던 제안
장현성과 연출가 장진은 1989년 서울예술대학교 동기로 만난 이래 39년 지기다. 오랜 세월 같은 업계에서 활동해 왔지만, 두 사람은 번번이 일정이 어긋나 함께 작품을 올린 적이 없었다.
드디어 함께 작업할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장진이 건넨 제안은 간단했다. 2015년 꽃의 비밀 이후 11년 만에 새 창작극 대본을 썼다는 소식과 함께 일정이 되는지 물었다. 그리고 장현성이 결정을 내리게 만든 한 문장이 뒤따랐다.
장현성은 "장 감독이 그저 '신구 선생님이 하신다'고만 말했다"며 웃었다. "영화 대부에 나오는 장면 그대로라고 말해 줬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장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함께하기 불편한 사람으로 장현성을 꼽았다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오랜 친구 사이에만 가능한 장난이다. 장현성도 지지 않고 "연습 때는 내내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것 같았는데, 연기였다"고 맞받았다.
서울예대 89학번 동기 중에는 장항준 감독도 있다. 장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최근 관객 수 1,500만 명을 돌파하며 올해 한국 영화 중 최다 관객을 동원한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됐다. 장현성은 이 영화에 짧게 카메오로 출연했다. 더 비중 있는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까지 크게 될 줄은 몰랐다. 알았으면 멱살이라도 붙잡았을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이어 "그 친구의 선한 마음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알아봐 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싶다"고 따뜻한 소회를 더했다.
무대 위에 살아 있는 연극의 전설
한국 연극 관객에게 신구의 무대를 직접 본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작품을 감상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초연을 관람한 평단은 그의 무대 장악력을 '비범하다'고 평했다. 90세라는 나이 때문만이 아니다. 역할에 쏟는 완전무결한 몰입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신구는 첫 연습 자리에 이미 대사를 모두 외우고 나타났고, 매 공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낸다.
극 중 신구는 시력을 잃은 대신 청력이 예민해진 맹인 금고털이범을 연기한다. 다섯 명의 도둑 중 돈이 목적이 아닌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쫓는 것은 소리다. 금고의 다이얼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맞을 때 나는 미세하고 독특한 기계음. 인간의 욕망과 헛된 약속들을 그려 낸 이 작품에서, 정작 자신이 진짜 원하던 것을 찾아내는 유일한 사람은 이 맹인 캐릭터다.
평단은 신구의 연기를 이 공연의 도덕적·연극적 중심으로 꼽았다. 한 평론가는 "목소리의 크기나 과장된 몸짓이 아니라, 완벽한 존재감에서 비롯되는 특유의 권위로 무대를 장악한다. 시선을 뗄 수가 없다"고 평했다.
장현성은 과거 고(故) 이순재와 2인극 무대에 올랐던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드라마 일정이 겹쳐 출연을 거의 포기할 뻔했던 작품이었다. '이 선생님의 마지막 연극이 될지도 모른다'는 친구의 설득에 결국 드라마를 중단하고 무대에 섰다. 그 후 이순재는 연극 세 편을 더 소화했다. 장현성은 "그분의 에너지는 정말 대단했다. 오히려 내가 배운 것이 더 많았다"고 회상했다.
스스로도 여정의 끝에 대해 담담히 말해 온 신구와 함께 무대에 서는 지금, 장현성은 단 한 순간도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다. 그는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로 돌아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건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선물"이라고 말했다.
욕망이 얽힌 블랙코미디의 안쪽
불란서 금고는 정전이 예정된 어느 날, 한 은행의 지하 금고실을 배경으로 한다. 서로 모르는 다섯 인물이 각자 이곳에 도착한다. 모두가 난공불락이라는 프랑스제 금고를 열 특별한 기회를 잡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서로의 이름도, 그곳에 모인 진짜 이유도 알지 못한다. 110분 동안 이들의 엇갈린 계획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장진 특유의 어두운 인간 희극이 숨 가쁘게 펼쳐진다.
장현성이 맡은 교수는 겉보기엔 차갑고 이성적이다. 논리로 상황을 통제하는 유형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선택을 복잡하게 만드는 비밀을 품고 있다. 무대에서 빠져나갈 틈도 없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교수 역은 — 더블 캐스팅을 맡은 김한결과 함께 — 공연 내내 무대 위에 남아, 자신의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는 긴 독백을 이어간다.
한 연극 평론가는 "이 역할이 갖는 독립성, 그리고 긴 독백의 무게는 연출가가 배우에게 얼마나 큰 신뢰를 두었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 장현성 역시 이 장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최근 수년 사이 연출가와 가장 치열하게 머리를 맞댄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앙상블의 완성도 역시 남다르다. 정영주는 밀수꾼 역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주종혁은 좀처럼 위협적이지 않은 조직폭력배를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작품의 웃음을 책임진다. 김슬기는 상냥한 겉모습 뒤에 서늘하고 위험한 무언가를 감춘다. 그리고 조달환은 극 후반에 등장해 관객이 이해했다고 믿었던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 와일드카드로 기능한다.
대본의 웃음은 농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점점 더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데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각자의 계획이 의도와 반대 방향으로 굴러갈수록 웃음은 짙어진다. 이 모든 소동의 한가운데에는 굳게 잠긴 금고가 놓여 있다. 금고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일종의 거울이다. 인물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욕망과, 그 욕망을 좇아 기꺼이 치르는 어처구니없는 대가를 그대로 비춘다.
남은 공연 일정과 그다음
불란서 금고는 당초 공연 종료 예정일에서 일정을 늘려 오는 2026년 6월 7일까지 서울 대학로 NOL 서경스퀘어에서 공연된다. 공연이 연달아 매진을 기록하고,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마음을 울린 작품'이라는 관객 후기가 끊이지 않자 제작진은 연장을 결정했다.
신구에게 이번 공연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무대다. 그는 대강 임하지도, 관성에 기대지도 않는다. 매 공연 무대에 올라 역할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쏟아낸다. 이 자체가 그에게 연극이 어떤 의미이고, 연극이 관객에게 무엇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믿는지에 대한 조용한 선언인 셈이다.
장현성은 이번 경험이 자신의 남은 배우 인생 내내 가슴에 남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저 해내는 공연이 있고, 뭔가를 가르쳐 주는 공연이 있다"는 그는 "이번 무대는 내가 아주 오랫동안 배워 갈 작품"이라고 말했다.
reaction.title
저작권자 © KEnterHub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Entertainment Journalist · KEnterHub
Entertainment journalist specializing in K-Pop, K-Drama, and Korean celebrity news. Covers artist comebacks, drama premieres, award shows, and fan culture with in-depth reporting and analysis.
comment.title
comment.loginRequired
